꾼꿈2016. 1. 6. 10:47

어두운 방, 높아서 보이지 않는 천장, 좌우에 기둥마냥 솟은 두 개의 철제 계단. 원래의 색인지, 녹슨 탓인지, 검은색인 듯, 곤색인 듯, 푸른색인 듯한 계단이다. 나선형의 계단이 아름다울랑말랑 하다 결국 아름답지 않은데, 난간과 계단 사이마저 철판으로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대여섯 정도의 사람들과 몰려 다니니 낯섦으로 인한 공포가 조금은 준다. 그렇다 해도 이곳을 탈출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머리를 모아 방법을 의논하고 공유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직접적으로 타인을 도울 수 없다. 각자의 근력을 활용하여 탈출하는 수 밖에 없다. 본디 체력이 최하급인 나는 초조하다. 나만 남겨질까봐.


탈출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철제 계단을 오른다. 좌든 우든 상관 없다.

2. 차원의 문보다 약간 높은 곳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면 멈춘다.

3. 난간에 올라선다.

4. 반대 편 계단 쪽으로 날아오른다.

5. 차원의 문을 향해 떨어진다.


차원의 문은 허공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 무턱대고 허공으로 몸을 날릴 수 없으니 위치를 알아내야 한다. 두툼한 발포지를 몇 조각으로 자른다. 그걸 던졌을 때 어딘가에서 사라지면 그곳이 차원의 문인 것이다. 방바닥에 서서 발포지를 위로 던지는 멍청이가 있다. 나는 발포지를 한 손에 쥐고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오르며 주위를 보니 먼지 쌓인 책이 벽 가득 꽂혀있다. 엄청난 양의 책들이다. 꽤 높이 올라왔을 때, 발포지를 반대 편 계단 쪽으로 던진다. 천천히 하강하던 발포지의 한 모서리가 어디에 걸린 듯 고정된다. 두 계단 사이의 허공이다. 순간 원형의 문이 열리고 문 너머의 캄캄함으로 쪼옥-! 발포지가 빨려 들어간다. 신비로운 녹색의 불과 빛을 뿜으며!


아, 저기다! 두 계단 사이의 딱 저 높이! 금 테를 두른 두꺼운 빨간 책 근처!


방바닥에 모여 회의를 하는데,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우선, 차원의 문 위치를 찾았어도 그곳은 허공 어딘가여서 정확한 위치를 표식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발포지 던지기를 반복하여 위치를 눈으로 익혀야 한다.

또한 그 문은 굉장히 작다.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 자세는 차렷뿐이다.


한 남자가 나선다. 계단을 오르고, 난간에 선다. 뛰어오른다. 차렷자세로 차원의 문을 향해 떨어진다. 녹색의 불과 빛을 뿜으며 유유히 통과한다.


부럽다!


정신 없는 광대가 나타난다. 광대가 우리더러 파티에 가잔다. 광대는 우리를 이곳 저곳 끌고 다니며 탈출을 막을 심산인 것이다. 우리가 우물쭈물 대며 선뜻 따라나서지 않자, 광대는 허리를 ㄱ 모양으로 숙이고 등을 열어 보인다. 뼈, 근육, 내장 따위는 없는, 창고에 가까운 공간이 있다. 거기에 사람의 해골을 하고 박쥐의 날개를 가진 것을 나무덩굴로 고정하여 보관 중이다. 그것은 우리와 눈이 마주치자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그것의 앞에는 붉은 머리칼의 여자를 역시 나무덩굴로 고정하여 보관 중이다. 흰색의 풍성한 면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눈을 감고 있어 죽은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정말 죽었을 수도 있다. 광대는 그 여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라 다른 차원으로 가지 못하도록 보관 중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광대가 허리를 ㄱ으로 구부린 탓에, 해골은 여자 밑에 깔린 꼴이 되어 더 고통스러워한다.

광대는 등을 닫고 허리를 편다.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따라나서라는 듯하다.


노란 조명이 대리석 바닥과 벽을 비추는 곳이다. 한껏 꾸민 여자들이 우아 떨며 걸어다닌다. 시끌시끌하다.

누군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자, 너도 나도 가고 싶다며 다 같이 화장실엘 간다. 애석하게도 화장실이 복도 한 가운데에 이열종대로 있다. 남녀 구분 없이 아무 데나 한 칸씩 들어가 사용하는 형태다. 붉은 문의 위, 아래는 모두 짧아 문 밖에서 다리가 보인다.

화장실에서 탈출 방법을 소곤대려 했는데, 화장실이 이 모양인데다가 광대까지 쫓아와 어렵다. 광대는 한 칸을 차지하고 들어가 볼 일을 보더니 이내 나와 화장실 주변을 어슬렁 어슬렁 걸어다니며 우리가 무슨 이야기라도 할까 감시한다.

나는 흰 면 베개를 옆 칸 여자에게 던진다. 그 여자의 신음소리에 우리의 이야기소리는 묻히고 광대는 므흣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뜬다.


대부분의 사람과 함께 원래의 세계에 있다. 그러나 한 여자는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다. 껍데기만 남은 그녀의 몸이 종이인형마냥 늘어져있기 때문이다. 치료할 수 있는 병도 아니고, 애초에 병 자체가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그녀를 신경정신과에 데려가 본다. 차원 어쩌구를 지껄이며 치료 방법이 없냐고 의사에게 물으니 나까지 미친년 취급을 당할 뻔 했다! 약을 받아왔지만 당연히 그녀에게는 소용 없는 것이니 먹이지 않았다. 며칠 뒤 그녈 한 번 더 신경정신과에 데려갔지만 왜 왔나 싶은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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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Русалк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