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 취한 나는 끓어오른다. 그런데 조쉬도 그런 모양이다. 사람들 눈을 피해 어느 집의 지붕 밑이다. 조쉬가 나를 안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자신의 몸을 부빈다.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지만 키스는 하지 않는다. 아늑하고 달콤하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술에 취했어. 그리고 새벽이야. 다음 날이면 조쉬가 기억 안 나는 척 할지도 몰라. 아마 후회하며 사과를 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너무 좋아해서는 안 돼.'
조쉬를 가볍게 밀어내며 품 안에서 빠져나온다.
"미안해, 하지만 지금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우리 둘 다 너무 취했어. 너가 진심이라면, 내일 다시‥"
"맞아, 그래. 너 말이 맞다. 우리 둘 다 취했지." 라며 조쉬가 미소 짓는다.
날이 밝았다. 나는 묻는다.
"너 아직 그대로니?"
"응. 난 지금도 진심이야. 너는?"
우리는 웃는다. 조쉬가 나를 안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자신의 몸을 부빈다.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지만 키스는 하지 않는다. 황홀하다. 어깨동무를 하고 이슬이 맺힌 풀 밭 위를 걷는다. 가끔 들꽃도 보인다.
'그래도 아직 너무 좋아해서는 안 돼.'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미리 해두지 않고 깊은 관계가 되었다가, 나중에 이것 때문에 헤어져야만 한다면 상처가 너무 클 것이다. 앞만 보고 걸으며 말한다.
"조쉬, 할 말이 있어. 우리 집은 엄마, 아빠 모두 남자친구 만나는 걸 허락하지 않아. 그건 조쉬가 됐든, 다른 누가 됐든 마찬가지야. 조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남자친구라는 존재 자체가 싫은 거거든. 그래서 우리 아빠는 내가 모쏠인 줄 알고, 우리 엄마는 몇 명 알긴 했는데 그 때마다 나랑 싸웠어. 그래도 괜찮아?"
"오 마이 갇. 왜 그러시지? 하지만 그런 건 문제 되지 않아."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조쉬 너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부모님 심각한 상태야."
"상관 없어."
볼을 부빈다. 달아올라 몸을 부비지만, 조쉬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몸을 떨어뜨린다.
"아직은, 아직은 너무 이르지."
"맞아. 너무 빠르지."
'좋다 말았네.'
걷다 보면 종종 바위 뒤에 앉아 있던 조쉬의 친구들이 벌떡 튀어일어난다. 그들은 축하한다며 환호하고 손을 흔든다.
'그러고보니 가비와는 어떻게 된 거지? 약혼도 했었는데, 헤어진건가? 하긴, 헤어졌으니 나랑 만나는 거겠지. 친구들도 공개적으로 축하해 주고 있잖아. 괜한 걸 물어서 가비를 떠올리게 하고 싶지는 않아.'
"조쉬, 그리고 또 할 말이 있어."
"응, 뭔데?"
라고 말하며, 통나무 집에 들어간다. 이곳은 맥주를 팔고 다트를 던질 수 있는 가게다. 사람들로 북적거려 산만하다. 내가 대답을 할 틈도 없이 조쉬는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포옹을 한다. 나는 조쉬의 옆에서 모기만한 소리로 중얼거린다.
"내가 지금 공부 중이라 조쉬에게 집중할 수 없어. 그래도 괜찮아?"
조쉬는 듣지 못한다. 나처럼 걸리적 거리는 게 많은 사람과는 오래 가기 힘들 거라 생각한다.
'그래, 너무 좋아해서는 안 돼. 그러다간 나만 상처 받을 거야'
분식 집에서 시드니를 비롯한 여자들과 떡볶이를 먹는다. 나는 잠깐 일어나 바로 옆의 다른 분식 집을 간다.
"아줌마, OOO 하나 포장 해주세요."
"하나만?"
"네, 한 명만 먹을 거라서요."
"대신 현금만 된다?"
"네. 요 옆 가게에서 밥 먹고 찾으러 올게요. 포장 해 놔 주세요."
다시 자리로 돌아가 떡볶이를 먹는데, 체크카드 뿐이고 현금이 없다는 게 번뜩 생각난다.
'아, 시드니랑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어쩌지? 어쩔 수 없어, 그나마 아는 사람이 시드니 뿐인데. 부탁해야지.'
"시드니. 진짜 진짜 미안한데 나 현금 좀 빌려주면 안 돼? 이만 원, 아니 아니 만오천 원 쯤. 옆 가게 아줌마가 현금만 된다고 했는데 내가 체크카드 뿐이라. 집에 돌아가자마자 너 통장으로 부쳐줄게."
시드니가 지갑을 여는데 힐끗 보니 만 원짜리 한 장, 오천 원짜리 한 장, 천 원짜리 한 장이 있다. 그런데 시드니가 하얀 종이 세 장을 주는 것이다. 앞면으로 돌려보니 십만 원짜리 수표 세 장이다. 아마 내가 돈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큰 금액 필요 없어. 진짜 옆 가게에서 조쉬 줄 음식 포장해 가려는데, 수표로 주면 아줌마가 거스름 돈 못 준다고 할 거야."
시드니가 말 없이 만 원짜리 한 장, 오천 원짜리 한 장, 천 원짜리 한 장을 모두 건넨다. 나는 수표 세 장을 돌려준다.
"고마워, 고마워! 여기에 너 계좌번호 적어줘. 집에 가자마자 바로 부칠게."
시드니가 유산지 같은 것에 매직으로 숫자를 적는다. 그 종이를 가방에 챙겨 넣는데, 가방에 십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더 있다. 당연히 시드니 것이라 생각하고 돌려준다.
"어?! 여기 한 장 더 있어. 왜 안 돌려줬지? 여기."
'하마터면 도둑으로 오해 받을 뻔 했어. 분명 세 장 받고 세 장 돌려줬는데, 이 한 장은 여기 왜 있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