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얭, 그리고 나는 절친하다. 얭은 한국말을 알아듣지만, 나는 그녀와 영어로 대화한다. 우리 둘은 복도에 등을 기대 앉아 잡담을 한다. 그 후 우리 셋은 정신 없이 외과 병동을 누빈다. 계단을 바삐 오르내린다. 나는 외도 중이었는데 그것을 한 남자에게 들켰다. 변명을 쥐어짜내려 머리를 굴리지만 결국 실패다.
무얼 기다리는 건지 사람들이 줄 지어 바닥에 앉아있다. 그곳에서 지온이를 돌보고 있다. 그 작은 것이 사랑스럽다. 찬 바닥에 뉘이고는 자는 모습을 바라본다. 아가 머리 맡으로 벌레가 한 두마리 기어다닌다. 이불째 질질 끌어 자리를 옮겨준다. 그러나 그곳이 음식물 쓰레기가 가득 찬 하수구 옆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윽고 하수구에서 쏟아지는 구더기, 개미, 바퀴벌레, 장수풍뎅이, 왕사슴벌레가 아가를 덮는다. 시체 위를 덮듯, 그리고 아가가 그 자리에 누워있는 것도 모를 만큼. 나는 소리를 지르고 발을 동동구르며 벌레떼를 털어낸다. (줄 지어 앉은 사람떼 중 이 일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다.) 벌레떼가 아가의 콧구멍, 입으로 들어갈까 걱정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가는 평온히 잠만 잔다. 벌레떼는 털려도 다시 기어오는지라 아가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벌레떼를 맛있는 음식물 쓰레기 쪽으로 유인한다. 계획대로 됐다.
한 시름 놓고 뒤를 돌아보니 아가가 없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아가를 찾는다.
"지온아~ 지온아~"
"저기요, 지온이 못 봤어요?"
(줄 지어 앉은 사람떼 중 이 일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다.) (길거리를 걷는 사람떼 중 이 일에 관심을 갖는 이는 없다.)
아가의 엄마가 날 노려보는 모습을 상상한다.
"너 땜에 내 딸을 잃어버렸어. 어쩔꺼야, 어쩔꺼냐고!"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정말 잠깐이었는데, 정말 잠깐 뒤를 돌아 벌레를 치운건데. 정말 죄송해요."
어떤 건물을 올려다보는데 그 건물에서 아가가 창 밖을 구경하고 있다. 아가는 윤미O 이모의 품에 안겨있다. 황급히 올라간다. 제발, 제발, 이동하지 말고 거기 그대로 있어라, 제발!
"헉헉, 이모! 지온이 어디서 찾았어요? 뭐하고 있던가요?"
"누워있는 거 데리고 안고 나왔어."
"이모는 왜 말도 안하고 애를 마음대로 데려가요! 내가 얼마나 놀래서 찾아다녔는지 알아요? 어휴, 짜증나."
아가를 받아 안고 그 건물을 빠져나온다. 이 일에 관심이 없는 이가 걷던 길을 걷는다. 이 일에 관심이 없는 이가 앉아 있는 줄을 향해 걷는다.
"지온아~ 잘 잤어? 어디 갔다 왔어~ 언니 너무 너무 놀랬잖어. 엄마한테 가자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