꾼꿈2015. 12. 28. 16:59

1층 엘리베이터 앞이다. ▲버튼을 누르고 윗 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길 기다린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스르륵 열린다. 가야할 층이 15층이라 가정하자. 15를 누른다. 습관처럼 숫자판을 올려다 본다.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이 차례로 숫자가 바뀌어야 하고, 실제로도 이 차례로 층과 층을 이동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1, 17, 33, 450, 180, 279, 316, 71, 14, 16, 123, 98, 204 ‥


(그 건물은 20층짜리 건물이다.)

(15층에 설 듯 하면서도 15층에는 멈추지 않는다.)


숫자판의 숫자가 혼란스럽게 바뀌고, 엘리베이터는 이 층 저 층을 미친 듯이 이동한다. 오르락 내리락하는 그 속도와 압력이 강렬하다. 폭주하는 엘리베이터의 끝이 땅 끝으로 추락하여 나와 함께 터지는 것일까봐 겁이 난다. 엘리베이터의 작은 창으로 밖을 살핀다. 건물을 뚫고 나가기라도 한 걸까? 늘 보이던 엘리베이터의 회색 벽도 보이지만, 때로는 하늘 색의 하늘, 구름 색의 구름, 산 색의 산이 보이기도 한다. 바깥의 바람이 강한지 외줄에 매달린 엘리베이터가 좌우로 흔들린다. 하늘, 구름, 산, 바람에 흔들리는 탈 것이라니! 케이블 카를 타고 산 정상을 향하는 게냐.


가끔 엘리베이터가 정지하고 문이 열리기도 한다. 하지만 특정 층에 서는 것이 아니라, 5층과 6층 사이 혹은 27층과 28층 사이에 서기 때문에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수 없다. 아무 층이나 정확하게만 멈춘다면 그것이 100층이 됐든, 200층이 됐든 걸어서 15층에 갈테니, 제발 정상적으로만 멈춰달라고 빈다. 휘청거리는 몸을 고정시키고자 땀이 나 차갑게 식은 손으로 엘리베이터 난간을 붙잡는다.


나는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다. 나는 공중제비를 돌며 토끼 굴 아래로 떨어지는 앨리스다.


이 꿈을 반복해서 꾸다보면, 꿈 속의 나는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이렇게 생각한다.

'그 때 그 꿈처럼 오늘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괴로워하면 어떡하지? 그냥 걸어 올라갈까?'

'에이, 귀찮다. 15층까지 언제 걸어 올라가. 엘레베이터 타야지, 뭐.'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누가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elevator는 '엘리베이터'란다. 젠장, 알 게 무언가? 엘레베이터든 엘리베이타든 에레베이타든 에레베-타든 알 게 뭐냐는 말이다. 자동 승강기 안 에서 고통 받는 것은 나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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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Русалк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