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현실이 아닌 것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나는 의식이 없는 중환자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중환자인 나의 꿈 속 세계다. 중환자인 나는 이 꿈이 달콤하여 깨어나기를 거부한다. 비록 꿈 속의 거짓 나는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악몽일지라도, 중환자인 나는 꿈 꾸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으니 달콤한 꿈이라 부를 수 있다. 그 고통은 어차피 허상이니, 꿈 속의 년이 괴롭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어쩌면 현실의 엄마는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간이침대에서 불편한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 손을 꼭 잡고 "제발, 부탁이야. 눈 좀 떠 봐. 이 엄마를 봐서라도 한 번만, 응?'을 연신 중얼대며 흐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야, 꿈이 편하더라도 일어나 드려야지.
꿈을 끝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엄마, 아빠가 중환자인 나를 포기하는 것이다. 중환자인 나의 뇌가 꺼지면 자연스레 꿈도 꺼질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미련한 모성애에 비추어 볼 때 실현가능성이 낮다. 다른 하나는 꿈 속의 죽음이다. 꿈 속의 나는 자주 꿈을 꾸는데, 꿈 속의 꿈에서 깨어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꿈은 죽음이다. 따라서 중환자인 나의 꿈을 깨는 데 가장 효과적인 것도 꿈 속 나의 죽음이다. 몇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달리는 차에 뛰어들기, 높은 우리 집에서 추락하기, 타이레놀 스무 알 먹기, 아빠의 차 안에 가스를 피운 뒤 데킬라 한 병을 마시기.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은 노란 전조등이 어른거리는 밤에 적합하다. 그것은 '춤 한 번 추지 않겠어요?'라며 수줍게 달려든다. 그러면 나는 그 따뜻한 품 안에 몸을 맡기고 싶은 것이다.
나는 마음을 고쳐 먹는다.
'만약 여기가 현실이라면 나는 어이없는 착오로 현실을 끝내버린 거야. 조금 더 고민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아.'
나는 마음을 고쳐 먹는다.
'하지만 그 사이에 미련한 부성애가 현실의 나를 죽여버리면 어떡하지?'
'하지만 그 사이에 너무 늙어버리면 어떡하지? 그 사이에 엄마, 아빠는 모두 죽고 나도 할머니가 된 거야, 그럼 어떡하지?'
나는 마음을 고쳐 먹는다.
'애초에 터무니 없는 상상이야. 여기가 현실인데, 이런 고민을 하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돼.'
'나는 여기가 현실이란 걸 알아. 나는 미치지 않았으니까.'
나는 마음을 고쳐 먹는다.
'한 번 이 곳 사람들에게 여기가 현실이 맞냐고 물어봐 볼까?'
나는 마음을 고쳐 먹는다.
'비웃음을 살거야. 고약한 것들이 나를 정신병동에 쳐 넣을테지.'
'어차피 이들이 나를 곱게 보내줄 리가 없잖아. 당연히 여기가 현실이니 여기에 머물러야 한다고 대답하겠지.'
나는 마음을 고쳐먹는다. 나는 미친 여자가 아니니 이곳의 규칙에 따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