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다. 고맙다. 미안하다. 걱정되다. 불쌍하다. 밉다. 답답하다. 지겹다. 이해하기 힘들다. 원망스럽다.
불과 일 이년 전까지만 해도 엄마를 향한 감정은 전자의 다섯 개뿐이었다. 오로지 愛뿐이었다. 최근에야 후자의 다섯 개가 스멀스멀한 것이다. 모순은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나 모순은 타인이 겪을 때나 간간한 것이다. 모순이 자기의 과제가 된 순간 그것은 혼란, 어지러움, 멀미, 구토를 야기한다. 안정과 평화를 갖고 싶어 논리와 통일을 데려왔다. 그런데 논리는 무지를 비난함으로써, 통일은 전체주의와 유사한 폭력으로써 한 가지를 포기하라 했다. 그런데 나는 둘 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한 발짝 양보하여 이런 방법으로라도 사건을 종결하려 했다.
愛51:憎49 또는 愛70:憎30 또는 愛89:憎11
그러나 愛와 憎을 상상 속 양팔저울에 달아보는 일이 마침맞게 될 리가 없었다.
이유 없이 황야의 이리를 떠올린다. 그제서야 황야의 이리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헤세도 그러하였는데, 나 따위가 분열을 피하려는 건 오만 방자한 짓이다. 황야의 이리를 떠올린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뇌에게 감탄한다. 컴퓨터에서 원하는 것을 찾으려면 무언가를 입력해야 한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 가지런한 목록을 보고 괜찮아 보이는 것을 하나하나 열어봐야 한다. 뇌는 그렇지 않다. 뇌의 저장 목록 따위를 뇌는 저장하지 않는다. 뇌도 모르게 저장했다손 치더라도 뇌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뇌는 괜찮아 보이는 것을 하나하나 열어보는 최첨단 기술을 활용할 수 없다. 뇌도 몰랐던 필요한 정보를 뇌가 핍!하고 보여주는, 몇 만년된 구식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구식은 최첨단을 만들었지만, 최첨단은 아직도 구식을 만들지 못한다. 구식은 최첨단을 이해했지만, 최첨단은 아직도 구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신경정신의학(學) 대신 지저분한 것을 그 꼬락서니 그대로 끌어안는다. 두 팔에 모두 품고가야 할 병아리 아닌가. 지게에 모두 얹고 가야할 땔감이 아닌가. 병아리를 떨어뜨릴까 팔이 저려도 움직이지 않는다. 잔가지라도 흘릴까 밀삐가 어깨 살을 파고들어 피로 물들어도 고쳐 메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