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5. 12. 22. 11:42

어제, 기억과 감정을 헤집는 일을 했다.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건 외면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는 무슨 바람이 들어 - 아마도 이 공간을 만든 후부터, 아니 사실은 이 공간을 만든 목적 그 자체였을 것이다 - 그 일을 시작했다. 미친 사람마냥 끝 없이 내려가는데 - 그 글들은 미완성이다 - 도서관이었던지라 또옥또옥 떨어지는 눈물을 감추려 고개를 이리저리 꺾어야만 했다.


불현듯 친구가 알려 준 단지가 떠올랐다. 단지네처럼 남녀차별 심한 집이 있냐던 인터넷의 글도 떠올랐다.

'북마크에 추가해 놓길 잘했어.'

재빨리 접속해 단지를 보기 시작했다. 한 컷 한 컷 세심히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스크롤을 미친 듯이 굴렸다. 마음은 장맛날의 계곡 같았고 눈은 매웠다. '휴, 나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럼 다행인건가? 내가 행복에 겨운 걸까?하던 것도 잠시. 다음 화, 그 다음화, 또 그 다음화를 넘기며 단지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또 고개를 이리저리 꺾어댔다. 그것 때문에 슬픈데 그것으로부터 위안을 받았다. 무료공개 편까지 보고는 다시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 기록하는 데에 온 하루를 썼다.


밤, 그리고 새벽에는 단지를 다시 봤다. 이미 아는 장면인데도, 이미 아는 대사인데도 눈물이 흘렀다. 단지에 대한 글을 검색하다 "여중생A 못지 않은 발암 웹툰이 단지"라는 평가를 발견했다. 여중생A를 찾아보니, 예전에 한 번 클릭했다가 어두침침한 그림과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듯한 느낌 때문에 이내 흥미를 잃었던 웹툰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래도 그것이 단지같은 웹툰이라면 나를 위로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여중생A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며 퍼졌다. 이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을 굴렸다. 콧물을 시원하게 풀어내지 못하고 화장솜에 흡수시켰다.


우리 집에서 우는 것은 비웃음을 사는 부끄러운 일이므로 반드시 모두가 잘 때, 내 방 침대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위 방법으로 울어야 한다. 그래야 들키지 않는다. 가슴이 저릿저릿해 끄읍-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갈 때도 있지만 다행히도 문과 문 사이를 통과하기에는 작은 소리다. 그럴 땐 재빨리 휴- 숨을 뱉으면 약간은 진정되어 더 이상 끄읍-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다. 화장솜을 가지러 침대에서 일어날 때도 조심성이 필요하다. 매트리스의 끼익-하는 소리도 침대 전체를 끌고가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티슈를 뽑을 때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톡!하는 순간의 먼지 소리마저 들리기 때문이다.


한 가지 문제는 울고 있을 당시의 모습은 숨길 수 있지만, 울고 난 뒤의 부은 눈은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도 눈이 부어있어 낭패였다. 온갖 이유를 추측하는 체하며 이것저것 말해봤다. 엄마는 그런가보다하고 마는 눈치더니 "꼭 운 것처럼"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나는 당황하여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재빨리 다른 말을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 동안 울고 싶어도 눈물이 안 나서 답답하고 기뻤다. 어제는 나오는 눈물을 틀어막으려니 답답하고 시원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치지 않았으니까  (0) 2015.12.24
잡념  (0) 2015.12.24
피곤  (0) 2015.12.21
그 친구  (0) 2015.12.19
오롯하다.  (0) 2015.12.09
Posted by Русалк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