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114
火가 부글부글 끓는 날이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틀째 계속 된 편두통
머리를 움직이지 않을 때는 통증이 없었다. 그러나 머리를 약간이라도 움직이면 오른쪽 관자놀이 뒤편이 지끈거렸다. 특히 강의를 보다 머리를 좌우로 기우뚱 할 때와 걸을 때 절정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을 바로 뜨기도 힘들었다.
나의 두통에 타이레놀은 전혀 듣질 않고 게보린이 즉효길래 - 대부분 20분 內 - 게보린 한 알을 먹었다. 10시간이 지나도 편두통이 전혀 가시질 않아 한 알 더 먹고 잤다. 왼쪽으로 돌아누운 자세는 불가능할 정도로 오른쪽 관자놀이 뒤가 쪼개질 것 같았지만, 약 먹고 한 숨 자기의 힘을 믿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자고 일어난 뒤의 개운함 따위는 없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기도 전에 오른쪽 관자놀이 뒤편의 지끈거림이 느껴졌다. 빈 속에 먹고 잔 게보린 때문인지 속도 메스꺼웠다. 그 때부터 火가 시작되었다. 빈 속에 게보린 한 알을 더 먹었다. 여전한 편두통 때문이기도 했지만, 약간의 가학적 심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대로 더 아파버려라, 시펄하는 마음 말이다.
둘째, 가정
편두통을 엄마에게 호소했는데 별 반응이 없었다. 몇 분 뒤 엄마가 외출하면서 말했다. 두 번이나.
"동생 아침밥 좀 차려줘~"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부모가 외출하면 왜 내가 동생의 밥을 차려드려야 하는가? 아니, 심지어 母만 외출할 때도 왜 내가 애비라 불리는 작자와 동생의 진지를 챙겨드려야 하는가? 싯펄, 짜증이 난단 말이다. 두 눈, 두 팔, 두 발,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모두 나보다 튼튼하고 음식을 쳐 넣을 주둥이와 胃 모두 나보다 큰데! 게다가 돼지 새끼마냥 쳐먹었으면 설거지라도 하든가, 숟가락 내리면 쏙 빠지는 꼴이 애비라 불리는 작자나 아들 새끼나 똑같다. 母의 부재시 밥상과 관련된 일은 당연히 딸년의 몫이라는 생각을 발(足)로 짓이겨 버리고 싶다. 그 은근한 표정과 말투도 싯퍼렇게 멍이 들도록 두들겨 패주고 싶다.
셋째, 도서관의 악취인
평소대로 아파트 內 도서관엘 갔다. 그곳에는 악취를 풍기는 세 명의 남자가 있는데, 오늘 그 중 한 명의 악취가 다른 날보다 더 심했다. 씻기는 하는 건지 의심스러운 몸 냄새, 언제 빨았는지 알 수 없는 옷 냄새, 담배와 커피가 섞인 숨 냄새, 이것이 보통의 냄새다. 그런데 오늘은 찌린내, 꼬랑내마저 나는 것이었다. 이 모든 냄새들은 서울역 노숙자 그 자체였다. 그 자가 걸어가며 바람을 일으킬 때, 나는 혹취에 소스라치게 놀라 엄지와 검지로 코를 막았다. 그 자가 가만히 앉아있을 때조차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나는 정말이지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폭력과 관련된 어떤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 자가 눈물을 흘리며 쓰러질 때까지 욕을 퍼붓고 싶었다. 니가 인간이냐고, 이 작은 도서관 가득한 니 놈의 썩은 내를 모르겠냐고, 가족들이 아무 말도 안 하더냐고, 싯펄놈아 씻고 다니라고, 500원 줄테니 아파트 內 샤워장 가서 씻으라고, 니가 사람 새끼면 하루에 한 번은 씻으라고, 그 자의 고막이 망가질 때까지 소리 지르고 싶었다. 그 자의 머리 끄댕이를 붙잡아 끌고 나가는 상상도 했지만, 그 기름 낀 머리를 만진다니! 상상만으로도 이미 두 손이 오염된 것 같아 역겨웠다.
햇빛을 쬐야겠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가려니 추워 유리문 안쪽에 있기로 했다. 대신 앉을 곳이 없어 서 있었다. 햇빛을 쬐러 나왔음에도 햇빛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눈을 감고 얼굴을 펼쳤다. 그렇게 20분 정도 가만히 햇빛을 구석구석 받아들였다. 너무나 따뜻하고 환해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햇빛의 살균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