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2017. 7. 20. 23:31

01 인간은 타인과 같아지고 싶어 한다 (1958년의 강연 '현대인의 도덕적 책임')


(...) 우리는 착취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아주 많이 변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껴 마땅하다.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19세기에 존재하던 의미의 착취가 실제로 끝났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


하지만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다. 오늘날에는 모두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모두가 자기 밖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이용한다. 사물의 생산이라는 한 가지 전능한 목표만이 존재한다. 우리가 입으로 고백하는 목표, 즉 인격의 완벽한 발달, 인간의 완벽한 탄생과 완벽한 성장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수단을 목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사물의 생산만이 중요한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기계를 생산하고, 점점 더 기계처럼 행동하는 인간을 제작한다. 19세기에 노예가 될 위험이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로봇이나 자동인형이 될 위험이 있다.


물론 분명 시간은 절약된다. 하지만 시간을 절약해 놓고는 막상 그 절약한 시간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한다. 기껏해야 시간을 죽이려고 노력할 뿐이다. 일주일에 3일만 일을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시간이 너무 많아서 뭘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영혼의 붕괴를 수용할 만한 병원은 아직 충분치 않다. (...)


19세기의 다섯 번째 악덕은 "내 집이 내 성이다."라는 태도였다. 몇 년 전 ≪포춘≫에 시카고 근처의 한 주택단지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새 아파트에 사는 여성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벽이 얇아서 좋아요. 남편이 집에 없을 때는 다른 지베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들을 수 있어서 혼자라는 느낌이 안 들거든요."


이제 문제는 '내 집은 내 성'이라는 태도가 아니라 사생활을 누릴 수 없는 무능력이다. 반드시 타인과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이다. 이것을 우리는 '소속감', '팀워크' 같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실상은 자신과 혼자 있을 수 없는 무능력, 자신이나 이웃의 은둔을 참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다. 그러니까 오늘 날 우리는 19세기의 중산층이나 상류층이 개인주의, 자기중심주의라 부르던 행동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Posted by Русалк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