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관2017. 11. 30. 14:26

제1부 행복론 - 삶의 지혜를 위한 아포리즘


제2장 인간을 이루는 것에 대하여


인간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 언제나 중요하다. 개성은 언제 어디서나 인간을 따라다니며, 그가 체험하는 모든 것은 개성에 의해 채색되기 때문이다.


명랑함이 우리를 찾아오면 언제라도 문을 활짝 열어 줘야 한다. 명랑함이 잘못된 때 찾아오는 법은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면에서 만족할 이유가 있는지 먼저 알려고 하면서 명랑함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또한 진지한 숙고와 중대한 걱정이 명랑함으로 인해 방해받을까 봐 우려해서 주저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진지한 숙고와 중대한 걱정으로 무엇을 개선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반면에 명랑함은 직접적인 이득이 된다. 명랑함만이 행복의 진짜 주화와 같은 것이다. 다른 모든 것처럼 어음과 같은 것이 아니다. 직접적으로 현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명랑함밖에 없기 때문이다.


침울한 사람은 열 가지 계획 중에서 아홉 가지를 성공하더라도 이 아홉 가지에 대해 기뻐하지 않고 그 한 가지 일을 실패한 것에 화를 낸다. (...) 침울한 사람, 그러므로 음울하고 불안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대체로 명랑하고 아무 걱정 없는 사람에 비해 상상 속에서는 불운이나 고통을 많이 겪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을 별로 겪지 않는다.

만사를 비관적으로 보고 항시 최악의 경우를 두려워하며 그에 대한 예방책을 강구하는 자는 항시 사물의 밝은 면을 보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자에 비해 오산을 하는 경우가 적을 것이다. 하지만 신경계나 소화기관에 생긴 병적인 질환이 타고난 침울한 기분을 도와주면 그런 기분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지속적인 불쾌감이 삶에 대한 염증을 낳아 자살하고 싶은 기분이 생긴다. 그렇게 되면 아주 사소한 언짢은 일에도 자살 충동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불쾌감이 극에 달하면 언짢은 일이 없더라도 불쾌감이 오래 지속되는 것만으로도 자살 결심을 해서, 냉정한 숙고와 단호한 결단력으로 이를 실행에 옮긴다.


인간의 행복을 가로막는 두 가지 적수는 고통과 무료함임을 알 수 있다. (...) 궁핍과 결핍이 고통을 낳는 반면, 안정과 과잉은 무료함을 낳는다. 따라서 하층 계급 사람들은 궁핍, 즉 고통과 끊임없이 싸우는 반면 부유하고 고상한 세계의 사람들은 무료함을 상대로 끊임없이 때로는 정말이지 절망적인 싸움을 벌인다.

문명의 가장 낮은 단계에서 나타나는 유목생활은 최상층에서 일반화된 관광 생활에서 다시 발견된다. 유목 생활은 궁핍에서, 관광 생활은 무료함에서 비롯되었다.


정신의 둔감함 때문에 수많은 사람의 얼굴에 새겨진 내면의 공허가 발생한다. 이러한 내면의 공허가 드러나는 이유는 아무리 하찮은 사건이라도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늘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이다. 내면의 공허가 바로 무료함의 근원인 것이다. 이 공허는 무언가를 통해 정신과 기분을 움직이려고 늘 외적인 자극을 갈망한다. 따라서 무엇을 선택할지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 형편없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사람,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교와 대화의 종류, (...) 온갖 종류의 사교와 오락, 여흥과 사치를 병적으로 추구하는 까닭은 주로 이러한 내면의 공허 때문이다.


재기 있는 인간은 무엇보다 고통이 없는 상태,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상태, 안정과 여유를 얻으려고 애쓸 것이다. 즉 조용하고 검소한 생활,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없는 생활을 추구할 것이고, 그에 따라 사람들과 약간의 친교를 맺은 후에는 은둔 생활을 추구할 것이다. 또한 뛰어난 정신력을 지닌 사람은 심지어 고독을 선택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외부로부터 필요한 것이 더 적어지고, 다른 사람이 덜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는 비사교적인 인간이 된다. 정말이지, 사교의 질이 양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면 큰 세계에 나가 살아 볼 만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백 명이나 되는 한 무더기의 바보는 한 명의 똑똑한 사람만 못하다. 반면에 다른 극단에 있는 사람은 궁핍함에서 벗어나 겨우 한숨 돌릴 만하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심심풀이와 사교를 추구하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일념에 어떤 것에도 쉽게 만족할 것이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고독한 상태에서는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왕족이 입는 진홍색 옷을 걸친 멍청이는 자신의 애처로운 개성이라는 떨쳐 버릴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한숨짓는다. 반면 재능이 뛰어난 자는 삭막하기 그지 없는 환경을 자신의 사상으로 채우고 활기차게 만든다. 그 때문에 세네카가 "모든 어리석은 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권태에 시달린다"(『서간집』)고 한 말이나, "바보의 삶은 죽음보다 고약하다"는 예수스 시락의 격언은 그야말로 진리를 꿰뚫는 표현이다. 따라서 정신이 빈약하고 천박한 사람일수록 사교적임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고독과 천박함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자가 얻어 낸 자유로운 여가는 그의 의식과 개성을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게 해주므로 노력과 수고뿐인 그의 전체 생활의 결실이자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에게 자유로운 여가는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관능적 향락을 즐기거나 한심한 일을 하는 데 온통 여가를 보내다 그러지 않을 때는 무료해하거나 멍한 상태가 된다.


평범한 사람은 단지 시간을 보낼 생각만 하지만, 재능이 있는 사람은 시간을 활용한다.


카드놀이는 사교모임의 가치를 재는 척도이자 온갖 사고 행위에 대한 파산 선고다. 다시 말해 그들은 생각을 교환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카드를 돌리면서 상대의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아, 얼마나 한심한 족속들인가!


자유로운 여가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자아를 갖게 해주어 생활의 정수이거나 결실이므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은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은 자유로운 여가를 주체하지 못하고 끔찍하게 지루해하며 자신을 짐스럽게 생각한다.


내면의 부가 충분해서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외부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 없거나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어느 모로 보나 타인이나 외부로부터 크게 기대할 게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누구나 혼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혼자 있는 자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문제다. 때문에 가장 좋고 가장 바람직한 것은 각자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각주7. 저급함의 본질은 대체로 의식에서 의욕이 인식을 압도하는 데 있다. 그리하여 인식이 의지에 전적으로 봉사하는 정도에 이른다. 따라서 굳이 봉사를 강요하지 않는 경우, 즉 크든 작든 아무런 동기도 존재하지 않는 경우 인식 작용이 완전히 정지하며, 생각이 매우 빈약해지는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인식이 없는 의욕이란 세상에서 가장 열등한 것이다. 통나무도 인식이 없는 의욕은 있으며, 쓰러질 때는 적어도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때문에 그러한 상태가 저급함을 말해준다. 그와 같은 상태에서는 감각 기관과 감각 기관이 받은 자극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오성만이 활동할 뿐이다. 그 결과 저급한 인간은 어떤 인상도 항시 받아들일 상태에 있으며,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은 무엇이든 금방 지각하므로 아무리 작은 소리나 아무리 사소한 상황이라도 바로 동물의 경우에 그렇듯이 그의 주의를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그의 얼굴이나 외모에 그대로 나타나 그의 모습이 저속하게 비친다. 대부분의 경우 그렇듯이, 이 경우에도 의식을 홀로 가득 채우는 의지가 저열하고 이기적이며 열등하므로 그런 자의 인상은 더욱 눈에 거슬린다.


우리의 실제적인 현실 생활은 열정에 의해 움직이지 않으면 지루하고 무미건조해진다. 하지만 열정에 의해 움직이면 곧장 고통스러운 것이 된다. 그 때문에 의지에 봉사하는 데 필요한 정도 이상의 지성을 부여받은 자만이 행복하다. 그들은 실제적인 생활 말고도 지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실제로 남아돌아야 한다. 그래야만 의지에 봉사하지 않고 순전히 정신적인 일을 할 수 있다.


무게중심이 완전히 자신의 내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그런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기만 하면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결코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만큼 고립적 요소가 더욱 강해진다. 그들은 누구에게서든 언제나 자신과 다른 이질적 요소를 느껴 결코 남들을 자신과 동일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상이한 존재로 행동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에 관해서도 1인칭 복수인 '우리'가 아니라 3인칭 복수인 '그들'로 생각하는 것에 점차 익숙해진다.


평생에 걸쳐 매일 매 시간 그 자신 자체일수만 있다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할 게 없다.


원래 지니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남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으므로, 정신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자신의 소유물로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행위를 소원하게 만든다.

Posted by Русалк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