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7. 12. 14. 14:32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 벨을 눌렀다. 나는 외출한 나의 부모가 장난을 치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인터폰을 확인하지 않고 대문 앞에서 일부러

"누구세요?"

라고 물었다. 대문을 열어주지 않은 채로, 나도 장난을 치려고.


그러자 웬 나이 든 아저씨 - 이하 그 놈 -

"저 104동 사는 사람인데요, 신문 보는 거 바꾸시라고 왔어요!"

라며 - 거의 고함을 지르는 성량으로 -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집에 혼자였다. 공포와 안도가 동시에 찾아왔다. 장난치겠답시고 대문을 열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으로 느껴지던지.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죄송합니다. 집에 어른이 안 계셔서. 죄송합니다."

"네? 저 104동 사는 사람이라 이 아파트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지금 신문 보는 게 손해라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결정 권한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아, 저 104동 사는 사람인데요, 어른 없어요?"

"죄송합니다. 들어가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어른 없냐구요?"


그 놈은 포기를 몰랐다. 나의 소중한 대문을 그놈은 주먹으로 쾅쾅쾅 계속해서 두드렸다. 정말이지, 정말이지, 정말이지, 그 두꺼운 철로 만들어진 대문에 나는 진심으로, 진심으로, 또 진심으로 감사했다. 결국 나는 나이 든 여자의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시죠?"

"네, 저 104동 사는 사람이라 이 아파트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지금 사모님이 신문 보는 게 손해세요. 그래서 제가 신문 바꿔드리려고 왔습니다."

"신문 안 바꿉니다. 죄송합니다. 들어가보겠습니다."


그래도 그 놈은 계속해서 벨을 누르고,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려댔다. 그 때부터 나는 그 놈에게 대꾸하기 시작한 것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깨달았고, 인터폰으로 얼굴도 확인하지 않은 채 대답을 한 내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져 눈물이 났다. 그리고는 침묵했다. 그 놈은 약 2~3분 간 더 벨을 누르고,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려대다가 떠났다.



사흘 전이었다. 저녁 7시 경 누군가 벨을 눌렀다.

"이상하다, 올 사람이 없는데? 택배도 다 왔는데."

인터폰을 보니, 세상에, 그 놈이었다. 그 놈은 또 다시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엄마, 그 사람이야. 그, 그, 그, 몇 달 전에 나 혼자 있을 때 신문 바꾸라면서 난리쳤던 미친 놈!"

나와 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인기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놈은 순순히 떠났다.

"어머, 웬일이야, 엄마! 저 놈 왜 또 온 거야."

"그러게 말이다. 그 때 그 사람이야?"

"응, 아, 아, 소름끼쳐. 왜 왔어, 짜증나게"

그러고는 사건이 일단락 되는 듯했다.


저녁 9시 경 누군가 벨을 눌렀다.

"어머, 오늘따라 왜 이렇게 다들 벨을 눌러대는거야, 올 사람도 없는데."

인터폰을 보니, 세상에, 또, 또, 그 놈이었다. 그 놈은 또, 또,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와 엄마는 겁에 질렸다.

나와 엄마는 또, 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또, 또, 인기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놈은 떠났다.


더 이상은 안되겠다고 판단한 나와 엄마는 경비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비실에서는 보안팀이 직접 순찰을 나오고 CCTV 확인도 하겠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같은 층 이웃분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뭐 좀 여쭤보려구요. 혹시 댁에도 신문 보라고 하면서 나이 많은 아저씨 다녀갔나요?"

라며 통화를 시작했고, 잠시 후 나와 엄마는 더 겁에 질렸다. 그 이웃댁에는 그런 사람이 벨을 누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 집을 표적으로 삼은 것만 같아 소름이 끼쳤다.

"대체 왜 우리 집이지? 무서워서 밖에 나가보지도 못하겠어!"

우리는 대문의 모든 키 - 총 3가지 - 를 잠갔다. 잠갔지만서도 불안함이 가시질 않았다.


몇 분 뒤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다.

"그 사람을 잡았습니다. 배달 하는 사람인데, 배달 집을 잘못 찾아갔다고 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괜찮으실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웬일이야, 엄마, 그 놈 핑계도 잘도 댄다. 아마 단골 레파토리로 하나 갖고 다니나봐. 무서워, 또 오면 어떡하지?"

"그러게 말이다. 엄마도 무섭다. 꼭 집에 사람있나 확인하는 것 같고,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오고. 왜 저런대. 당분간 인터폰 꼭 확인하고 문 열어줘."


소름 끼치는 그 놈, 104동 살지도 않으면서 104동 산다고 하는 니 놈, 니가 주는 신문은 공짜여도 안 볼거니까, 제발 우리 집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아줘라고 빌었다.



그리고 그 날 새벽 꿈에서 나는 그 놈에게 시달렸다. 그 놈이 우리 집 거실 한 가운데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것이었다! 나는 후라이팬과 칼을 들고 그 놈과 맞서 싸웠다. 잠꼬대로 신음 소리를 내다가 깼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사  (0) 2017.12.19
치료  (0) 2017.12.15
변화  (1) 2017.12.09
소주  (0) 2017.12.01
치료  (0) 2017.11.30
Posted by Русалк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