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근대와 여성 혐오
- '한심스러운 아들'과 '신경질적인 딸'
(…) 일본판 근대가족을 '비참한 아버지' '답답한 어머니' '한심한 아들' '불만스러운 딸'의 관계로 기술한 적이 있다. 그 일부를 다시 실어보자.
아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어머니가 부끄러워하는 '비참한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에게 봉사하는 것 외에 살아가는 방법이 없는 '답답한 어머니'가 된다. 그러나 아들은 언젠가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아버지를 완전히 혐오하지 못하며 '비참한 아버지'와 동일화함으로써 '한심한 아들'이 된다. '답답한 어머니'를 궁지로부터 구출해 낼 기대에 답할 수 없기 때문에 아들은 깊은 자책감을 내면화한다. 동시에 아들은 '한심한 아들'로 계속 머무는 것이 어머니의 감춰진 소망, 즉 어머니의 지배권 밖으로 아들이 벗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답하는 길도 된다는 것을 어슴푸레 느끼고 있다. (중략) 딸은 '비참한 아버지'와 동일화할 필요는 없으나 아들처럼 자력으로 비참함을 빠져나올 수 있는 능력도 기회도 주어져 있지 않다. 내 의사를 전혀 반영시킬 수 없는 남성에게 인생의 조타를 맡긴 채 '답답한 어머니'가 되는 것 말고는 다른 인생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체념하기 때문에 딸은 '불만스러운 딸'이 된다. 딸은 아들과 달리 '답답한 어머니'에게 책임감도 동정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이 불쾌감은 더욱 커지게 된다. (…)
- '자책하는 딸'의 등장
(…) 젠더 효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결혼 말고도 사회적 달성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이 여성에게 열리게 됨으로써 딸 또한 어머니의 기대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힘들어지게 되었다. 딸은 '여자 얼굴을 한 아들'이 되었고 아들과 딸에 대한 기대 차이는 축소되었다. 단, 나는 이것을 저출산 효과로 보고 있다. 사정이 어찌 되었든 젠더 차이가 축소되었으니 기뻐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어머니의 딸에 대한 기대는 아들에 대한 기대와는 달리 양의성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는 딸에게 '아들로서 성공하라'와 '딸(=여자)로서 성공하라'를 동시에 보낸다. 두 메시지 모두 '제발 나처럼은 되지 말아 달라'는 자기 희생의 메시지이지만 그 속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너야'라는 질책의 메시지가 숨겨져 있다.
이러한 양의적 메시지를 받은 딸은 가랑이가 찢어질 상황에 처하게 된다. '불만스러운 딸'이 고도 성장기의 산물이었다면, 그녀들이 역사 속으로 퇴장하면서 대신 등장한 것이 어머니의 화신이 되어 그 부채에 신음하는 '자책하는 딸'이다. '한심한 아들'처럼 딸 역시 어머니의 행복에 책임을 질 입장과 능력을 부여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들과 달리 딸은 동일화의 대상이 어머니인 탓에 어머니의 만족스럽지 못한 인생을 대리 수행해야 한다는 책무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
- 근대가 낳은 여성의 여성 혐오
(…) 젠더나 신분의 차이가 변경 불가능한 운명으로 받아들여지는 곳에서는 '구별'은 있어도 '차별'은 없다. 같은 인간으로서 공약될 수 있는 분모가 생김으로써 비로소 차별을 부당하게 여기는 심성이 생겨나게 된다. 성차별 그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왔으나 근대는 비교에 의해 역설적으로 성차별을 강화하였다.
따라서 성차별을 고발하는 페미니즘은 근대의 직접적 효과에 의해 탄생한 것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학의 개척자였던 고 고마샤쿠 기미는 "'구별'이 '차별'로 승격되었다"고 이 변화를 환영했던 것이며 그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들은 끈질기게 '차별'을 '구별'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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