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7. 11. 16. 20:10

며칠을 울었다. '나의'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즉 그것이 '나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어떤지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다지 떨리지 않는 것 같다가도, 이루 말 할 수 없는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밥알이 입 안에서 굴러다니기만 할 뿐,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았다. 수능날 아침에도 잘 먹었던 밥인데. 6시 20분에 구비서류를 점검하는데, 구비서류에 정체 모를 얼룩들이 있었다. '아, 이렇게 더러워진 채로 서류를 내야하다니! 불길하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시선이 아래로 향했는데 흰 블라우스에도 같은 색의 얼룩이 묻어 있었다. 당황하여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제서야 손가락을 어딘가에 베었고, 거기서 나온 피가 여기저기 묻어 얼룩이 되었음을 알았다. 피가 뚝뚝 흐르는 손가락과 더러워진 흰 블라우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초점이 흐려졌다. 시간과 공간과 눈과 귀가 없어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없어진 눈에서도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냥 서 있었다. 엄마는 대일밴드를 가져와 손가락에 붙여주었고, 흰 블라우스에 묻은 피는 물로 닦으면 더 번질 것이라며 자켓으로 가리길 권했다.

"엄마, 나 그냥 안 가면 안될까? 나 정말 못가겠어."

엄마는 계속하여 나를 어르고 달래고 안아주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나도, 엄마도, - 만약 존재한다면 - 신도 달래줄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꾸역꾸역 차를 타고도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엄마, 나 정말 못가겠어."

하지만 차는 묵묵히 목적지를 향했다. 멀미가 났다.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이 일을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텐데라는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시간도 묵묵히 끝을 향했다. 그 날의 나는 찌질하고 비참했다. 한편으론 할 만한 것은 다 했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주고, 걱정해주고, 응원해준 가족 두 명과 친구 두 명과 익명의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사함이었다.

그 후 며칠을 잤다. 그러곤 오늘 다시 인턴 서류를 제출했다. 더 이상은 힘이 없다. 이제 너무 힘들어요, 제발, 그만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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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Русалк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