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그 친구

Русалка 2015. 12. 19. 20:33

10년이 넘은, 아마 11년째 함께인 친구가 있다.


중학생 때 학원에서 만났고 어느새 절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 친구는 그 시절의 나처럼 말이 많았고 목소리가 컸다. 자신감이 넘쳤고 활발했다. 노는 것을 좋아했고 사교성이 좋았다. 욕심이 많았고 독했다. 물론 그 친구의 이러한 특성은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현재의 나와는 매우 다르다.

그 친구는 항상 나보다 앞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움보다는 긍정적 질투와 자극이 되는 열등감을 불러일으켰었고, 덕분에 나도 더 열심히 공부했다.

둘이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학원 쉬는 시간에 급하게 사 먹던 빵, 자습 후 꿀맛같던 토스트와 오뎅, 방학기간 중 함께 먹은 도시락과 함께 다닌 수많은 식당들. 가끔 가면 그렇게 재미있던 노래방, 첫 음주라는 첫 일탈, 학원 땡땡이치기 등등.

지금의 나는 절대 할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즐거움과 왁자지껄함의 대부분에 그 친구가 함께였다.

좋은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라는 것이 아마 그런 관계였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물론 그 친구는 나보다 더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지만, 어찌됐든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니 그만이라 생각했다. 입학 후에도 그 친구는 나보다 높은 점수를 냈으나 나도 나쁜 성적은 아니었고 또 정확한 내신 등수는 알 수 없었기에 길게 담아두지 않았다. 오히려 3년 내내 같은 반을 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를 소위 말하는 "진정한" 친구라 생각했다.

예민할 수밖에 없던 시기였기에 그 친구에게 짜증을 느낀 적도 있다. 특히 모의고사를 본 뒤 자신의 낮은 점수를 - 물론 이것은 철저히 그 친구의 기준에서 낮은 점수였고, 그 친구 위의 학생은 5명 내외로 소수였다 - 떠벌이며 징징거리는 모습은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의 분노를 샀다. 참고로 그 친구는 이러한 행동을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친구는 졸업 석차 전교 1등이었다.

또 한 번은 가족에 대한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별거 아닌 취급하며 가볍게 넘기는 모습에 실망한 적도 있다.

이런 행동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으나, 그런 건 금방 잊혀졌고 그 친구는 늘 나의 절친이었다.

게다가 내 마음에 쏙 들 사람이란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고 그 친구도 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러다 그 친구와 약 1년 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때가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했는데 - 이 때도 그 친구는 나보다 한 수 위의 대학에 진학했지만, 나는 말 그대로 "한" 수 뿐이라 생각해 그 친구에 대한 시기는 맹세코 없었다. 게다가 몇 년 더 산 지금은 한 수 위라는 생각조차 없다. - 그 친구는 그대로였지만 나는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여전히 시끄럽고 기운 넘쳤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외출하는 것,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럴만한 체력도 없었다. 나는 그 친구가 피곤했다. 그 친구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그 친구를 피했고 그렇게 우리는 남이 됐다.

몇 달 뒤 그 친구가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기도 하고, 잘 지내나 궁금하기도 했지만 선뜻 먼저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기를 또 몇 달, 다른 친구가 매개가 되어 그 친구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고 나는 그제서야 반가움을 느꼈다. 옹졸한 내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반성했다. 약 1년만에 만났지만 우리는 어색함이 없었다. 어제도 만났던 것처럼 절친했다.


하지만 또 시간이 흐르며 나는 나와 그 친구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더 또렷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가장 큰 것이 남자와 관련된 것이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무려 지금까지, 그 친구의 남자 문제는 나를 미치게 만들어왔다. 어떤 남자들을 만났다 헤어졌다, 좋아했다 싫어했다 반복하며 실시간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다. 이 남자, 저 남자 동시에 만나며 - 세 명을 동시에 만나던 그 친구의 체력과 정신력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 누구를 고를까 끊임없이 재고 실시간으로 그 사고 과정을 전달한다. 처음에는 그 친구의 편에 서서 이해하려 애썼다. 그 친구를 몇 안 되는 '내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이 짓을 7년째하고 있다. 나는 7년째 그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천박한 사상은 물론이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말로 뱉어내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한심한 족속으로 성장했다. 다음은 그 친구가 식당에서, 카페에서 우렁찬 목소리로 당당히 떠들던 말들 중 일부이다. 


- "이 남자가 바빠서 나랑 카톡을 하지 못하거나 통화를 하지 못할 때, 아니면 데이트를 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서 저 남자가 필요해. 심심하지도 않고 불안하지도 않아."

- "나는 혼자 있는 게 싫어. 그래서 늘 약속을 잡고, 여기저기 만날 사람 없나 연락해 보고 그래. 안 그러면 갑갑해."


오, 그 친구는 혼자만의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멍청이가 되었다.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난 뒤 찾아온 여가를 즐기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가련한 멍청이가 된 것이다. 끊임없이 타인을 통해 이야기와 즐거움을 공급 받아야하는 텅 빈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텅 빈 자신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으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타인이 필요하다. 어쩌다 읽는 책들, 감명 깊게 읽었다는 책들은 그 친구의 공허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수준 이하의 신변잡기 책 뿐이다. 참! 자신은 두 세 명의 남자를 만나도 되는 이런저런 합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상대 남자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실제로 그런 일을 당했을 때의 부들거림은 덤으로 적어두겠다.


- "나는 전세로 시작하기 싫어. 그래도 남자가 서울에 살 집 정도는 해와야지."

- "여자는 좀 갸냘프고 남자가 보호하고 싶도록 행동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

- "남자들은 이런 화장 안 좋아해.", "남자들은 이런 옷 안 좋아해."

- "~ 정도 되는 남자 만나야지. 그래야 남들 보기에도 창피하지 않고."

"나는 결혼을 27~29살에 할거야. 30살 넘어가면 안 예쁘잖아."


오오, 뼛 속 깊은 전근대적, 봉건적, 가부장적 관념이여! 이것들을 진실로 내면화하여 실천하고 있는 자여! 남자의 기준에 자신을 맞춰가고, 남자에 기대 평안을 누려보려는 자여! 더 큰 문제는 자신이 그것에 감화됐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며, 그것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자신처럼 능력있는 여성을 옭아매 온 관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족쇄를 다시 차려는 그 미련함이란! 16년 간 수동적인 교육을 가장 성공적으로 이수하는 동안 그 친구의 능동적, 비판적 사고능력은 火葬되어 사방팔방 가루로 흩어지고 만 것인가?


그 친구는 중학교, 고등학교, 명문대학교를 최상위 성적으로 졸업했고, 남들이 넘보지 못할 직업도 가졌다. 그 노력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그런데 그것을 다 거뒀을 때, 그 친구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자유롭고 주체적인 사고가 가능하며 엉성하게나마 신념과 철학을 꾸려가는 인간인가? 나는 그렇지 못한 인간을 친구라 부를 수 있는가? 아니, 그렇지 못한 인간을 참을 수 있기는 한가?


최근들어 나는 그 친구 앞에서 입을 닫아 왔다. 아직은 "내 사람"이라 여겨왔기 때문이다. 10년 간의 추억을 소중히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 대한 견해를 내 치졸함의 산물이라 여겨왔기 때문이다. 이 인연과 악연이 얼마나 더 오래갈지는 모르겠으나, 그 친구가 조금만 더 분발하면 곧 결말을 볼 수 있으리라.